Saturday, December 13

그들은 사창가를 가거나 어두운 대폿집을 드나들며 퇴폐의 흉내도 냈지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지도자가 되는 길인가도 잘 알았다.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정말 방기하지는 않았다. 인호나 나처럼 온몸을 던지는 일은 곁에서 지켜보기에는 신나는 모험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끝내는 신중한 충고를 하며 한 걸음 비켜섰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매력 가운데 으뜸인 것은 역시 자기 존재와 생각을 서투르게 드러내지 않는 점이었다. 또한 밖으로 드러낼 때도 일부러 그것을 보편적인 사물에의 비유나 실제적인 것으로 바꾸어 표현했다. 그들 중 더 우수하고 현실적인 친구들은 육십년대에 외국기업들이 살금살금 발을 들여놓을 적에 외국회사의 지사원으로 출발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대기업 사원 또는 신문기자가 되거나 고시에 들었다. 나는 이런 정도의 수준에 있던 다른 학교의 고만고만한 또래들과도 연줄을 통하혀 알게 되었다. 그들의 대개는 명문대학으로 가서 서로 교제를 확대시키기 마련이었다. 이런 길에서 탈락되었던 청소년기의 어느 때부터 나는 저절로 알아차렸다. 이들이 얽어내는 그물망 같은 사교가 서로 직조 되어 일정한 그림으로 나타난, 이를테면 연애와 결혼, 성공과 실패, 출세와 낙오, 사랑과 야망 따위의 전형들이 결국은 한강을 둘러싼 자본주의 근대와 사회의 풍속도를 그려내고 있음을. 아니면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까지 연결되고 그 길은 더욱 확장되고 뚜렷해질 것이었다. 어쨌든 내가 그때의 그 모퉁이에서 삐끗, 했던 것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필연이었다. 그 길은 내가 어릴 적부터 어렴풋하게, 이건 빌딩가의 대로처럼 너무도 뻔하고 획일적이라고 느껴왔던 삶으로 가게 될 확실한 도정이었다. 그러나 벗어났을 때의 공포는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자퇴를 하고 나서 맥놓고 걸어가던 하굣길이 생각난다. 막상 일을 저질러놓고 나니 이제부터 내 앞에 놓인 길은 어디나 뒷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이제 의사나 법관이나 관료나 학자나 사업가나 존경받을 장래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 잘려나온 것이다. 나는 내안에서 두 가지의 세상을 겪는다. 어느 얌전하고 선량한 학생이 집에 가다가 골목길에서 야간부의 상업학교나 공업학교의 불량학생을 만나면 그들의 실체에 관해서 아무것도 므르면서 두려움과 적의를 갖는다. 십중팔구는 몇 대 얻어터질 수도 있고 용돈을 털릴 수도 있다. 나는 그 창백한 학삐리이면서 또한 불량배였던 것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집에서나 동네에서 빈둥거릴 때에 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당혹감을 느꼈다. 한편으로 그들에게 문제아 취급을 받다보니 소위 선량한 학생들은 어떠한가 하는 걸 비교적 냉정하게 살필 수가 있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신들과는 다른 나 같은 부류를 두려워하거나 믿지 못했고 호의를 보일 적에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나는 아침에 창문 앞에 서서 안개를 가르며 등교하는 여학생들의 하얀 칼라와 남학생들의 번쩍이는 모표를 바라보며 그들의 아득한 길을 가늠해보았다. -황석영, <개밥바라기 별> 에서